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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첫 사회회칙「진리 안의 사랑」

경제위기 등 21세기 국제사회 문제 총괄경제위기 등 21세기 국제사회 문제 총괄

오푸스데이에 관해2009-7-18.

▲ 세계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진원지 뉴욕 월가에 있는 이정표.

교황은 "글로벌 경제위기는 탐욕스런 금융자본의 도덕적 실패의 결과"라고 진단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7일 발표한 첫 사회회칙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뤄진 주제들이 매우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미국 산타 클라라대학 쿼크 한슨 교수는 "방대한 범위에 놀랐다. 단순히 교황 바오로 6세의 「민족들의 발전」(1967년) 최신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문헌이 아니다"고 말했다.

회칙은 외형적으로는 글로벌 경제위기 진단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노동과 고용불안ㆍ제3세계 빈곤ㆍ빈부격차ㆍ소비주의ㆍ환경파괴ㆍ인구감소ㆍ생명윤리 등 21세기 국제사회가 안고 있는 제반 문제를 총괄하고 있다.

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는 UN 개혁,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는 빈곤국가 지원 등 실천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점이 돋보인다.

교황은 회칙 발표 다음날인 8일 주례 알현에서 "이 회칙은 사회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법이 아니라 현 시대의 인간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원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역대 교황들 회칙과 비교해 국제사회, 특히 선진국들의 실천을 이끌어내려는 직접적 제안이 많다는 게 바티칸 주변 반응이다.

또한 교황이 방대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미뤄 이 회칙을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회회칙이라 생각하고 발표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회칙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2005년)와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2007년)에 이은 세 번째 회칙이지만, 사회회칙으로는 첫 번째다.

◆ 무슨 내용 담았나

「진리 안의 사랑」은 6장(서문ㆍ결론 제외), 79항으로 구성돼 있다.

교황은 우선 교황 바오로 6세 회칙 「민족들의 발전」(1967년)의 가르침을 상기시켰다. 「민족들의 발전」은 1950, 60년대 서구사회의 고도 경제성장과 개도국의 빈곤 확대, 이로 인한 무역 불균형과 불평등을 지적하면서 경제 정의와 상호 연대를 강조한 문헌이다. 특히 "국가들 사이에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불균형이 지나치면 긴장과 불화가 생기고, 마침내 평화를 위기로 몰아 넣을 것"이라며 국가간 보편적 사랑을 강조했다.

교황은 2장에서 현 시대의 인간 발전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찰했다. "경제활동의 궁극적 목적이 공동선 실현이 아닌 이익 추구라면, 그런 경제는 부를 파괴하고 가난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며 정의와 공동선에 입각한 인간 발전을 촉구했다. 교황은 실례로 투기적 금융거래, 이주노동자 착취, 무분별한 자원개발로 빚어지는 문제들을 지적한 뒤 "이러한 위기 징후는 인간사회 여정을 새롭게 짤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세계화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세상은 세계화돼가고 있으나 우리의 이웃은 형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을 떼어놓고 인간 발전을 얘기할 수 없다"며 저개발국의 산아제한, 서구 선진국의 출산율 감소와 안락사 법제화 등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생명을 부정하거나 억압하면 인간사회는 선(善)을 추구할 동기와 에너지를 상실한다"고 경고했다.

교황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 극대화에 혈안이 되어가는 신자유주의 시장(market)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교황은 "국제적 연대와 상호 신뢰가 없는 시장은 경제적 기능을 완전하게 수행할 수 없다"며 도덕적 양심과 책임감에 바탕을 둔 시장질서 회복을 주문했다. 아울러 미국 금융위기로 촉발된 현 글로벌 경제위기는 "투명성, 정직, 책임감 같은 전통적 사회윤리 원칙을 무시한 데서 온 결과"라고 진단하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한 국가적 개입을 촉구했다.

제4장에서는 인간 발전, 권리와 의무, 환경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교황은 "빈곤국 국민들이 식량과 물이 부족해 하루하루 비참하게 목숨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선진국과 국제기구들이 '정당한 권리' 운운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통탄하고 윤리적 차원에서 권리와 의무를 성찰하라고 말했다.

교황은 또 제5장에서 "인간 발전은 인류가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며 인류 가족의 협력을 당부했다. 교황은 이와 관련해 사회교리의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인 연대성을 설명하고 "상호 의존과 유대는 사회원리이며 도덕적 덕목이기에 선진국은 가난한 국가들과 가진 것을 나눠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빈곤국가의 발전을 위한 연대는 현 글로벌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 국제원조는 저개발국의 의존심을 키워서는 안 되기에 그들에게 성장 발판을 제공하는 형태의 도움이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주민 급증 현상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교황은 "지금 어느 나라도 이주민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주노동자의 고용불안과 가난은 그들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데서 초래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 "금융가들은 하루 빨리 도덕적 기반을 회복해야 한다"며 "UN과 국제경제기구 등을 개혁해 (국제금융질서를 감시하는) 실질직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방 언론들은 교황의 이 제안을 거두절미하고 "세계경제를 통제할 수 있는 중앙집권적 기구 설립 촉구"라고 과장 보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제6장에서는 인간과 과학기술의 문제를 다뤘다. 교황은 "인간의 도덕적 책임과 첨단 과학기술 사이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분야가 바로 생명윤리"라며 첨단 생명공학이 인간 생명의 신비를 벗겼다는 오만은 어리석은 속단이라고 말했다. 또 "과학기술은 완전한 자유를 가질 수 없다"며 과학자들의 책임감을 강조했다.

▲ 에티오피아 남부의 한 여성이 영양실조에 걸려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아이를 안고 자선병원에서 진료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회칙 「진리 안의 사랑」에서 "굶주림은 현 인류사회의 수치스런 추문(scandal)"이라며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한 선진국 지원을 호소했다.

◆ 진리와 사랑에 답이 있다

회칙 「진리 안의 사랑」은 21세기 국제사회가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회칙의 핵심은 제목대로 '진리(Logos)에 따른 사랑(Agape) 실천'이다. 교황은 "우리 사회는 물질의 유혹에서 벗어나 인간의 선을 증진하는 가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공동선에 봉사하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책임감을 갖도록 이끌며, 부에 대한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 사랑"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또 "진리와 사랑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진리와 사랑 없이 정의를 추구하면 자칫 그것들을 훼손하는 공허한 의제가 된다. 또 진리 없는 사랑은 감정적으로 흐르고, 사랑 없는 진리는 차갑고 계산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이같은 정의가 복음에 기초하고 있음을 서문에 밝혀 두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7-18).

이 회칙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미국 포담대학 신학부 테렌스 W. 틸레이 교수는 "보수적 신학자로 평가받는 교황의 사회정의 인식이 이처럼 깊고 넓을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미국 산타 클라라대학 쿼크 한슨 교수는 부의 재분배와 지원 확대 촉구에 대해 "가난한 나라들을 돕는데 적극 나서달라고 선진국들에게 보내는 절박한 호소"라며 "어떤 면에서는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시자로 거액의 재산을 빈곤국의 가난퇴치를 위해 기부)가 이 회칙의 캐릭터가 될 만하다"고 말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교황이 고삐 풀린 자본주의와 규제받지 않은 시장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교황은 3만 단어에 달하는 이 회칙에서 '자본주의'(capitali sm)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 회칙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 이후 14년 만에 나온 사회회칙이다. 또한 회칙에서 다룬 주제들은 한국 사회 및 경제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예언자적 소명을 수행하기 위해 이 회칙을 연구, 실천해야 할 과제가 한국교회에 새롭게 주어졌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평화신문 200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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